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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속에서 : [세 왕 이야기]를 읽고
 최영원    | 2006·11·05 21:29 | HIT : 1,406 | VOTE : 256


금 세속적인 생각일지는 몰라도, 만약 성경을 읽으면서 마치 무협지를 읽는 것과 같이 흥미진진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을 찾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구약의 사무엘서가 단연 으뜸이 되지 않을까 한다.

역사적으로, 사무엘서는 이스라엘이 부족 연맹체에서 벗어나 군주제를 표방하는 왕정국가로 변천하는 과정을 기술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인간사에서는 필연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음모와 배신과 반역의 역사를 적나라하게 기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 왕 이야기]는 사무엘서의 주요 등장인물인 다윗과 사울, 압살롬의 관계를 토대로 비록 세상적으로는 화려한 권력을 소유하는 군왕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버림을 받는 자와 신임을 받는 자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극명하게 보여 줌으로써, 믿음의 폭과 깊이 즉 하나님을 신뢰함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지은 이의 높은 식견과 성찰을 통해 심도 있게 그러나 어렵지 않고 명확하게 나타내 주고 있다.

다윗이나 사울이나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것은 같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따라서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된 반면, 사울은 그렇지 못하여 불순종과 교만으로 끝내 비참한 말로를 맞게 되지만, 하나님께서 왜 사울을 그렇게 쓰셨는가에 대한 것은 쉽사리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하나님은 왜 그렇게 하신 것일까? 사울에게 기름 부어 주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연합하여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도록 능력을 주신 것은 무엇이고 미친 왕처럼 전락하게 하신 것은 또 무엇인지? 왜 그처럼 모순 된 모습으로 사울을 쓰신 것일까?

또한, 자기 형을 죽이고 아버지에게 반역한 압살롬의 비극이야 그렇다 하고, 다윗도 한때 군대장관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 아이까지 갖게 한 소위 밧세바 사건으로 인해 결국 우리아를 죽음에 처하도록 만든 죄를 지은데 대한 결과로, 자식들 가운데에서도 그와 똑같은 죄로 피를 흘리게 까지 하였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는 자기의 아들들인 압살롬과 아도니야로부터 각각 반역의 수모를 당하였지만, 비록 그 죄과는 치렀다고 하더라도 이 과정들에서 사울과는 달리 끝까지 일관 되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지켜 주신 것은 무슨 이유였는지···


러한 모순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시려는 것이었을까?

그 교훈을 일깨우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전반에 걸친 저자의 의도이며, 다음의 말로 집약하여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바를 꿰뚫고 있다.

  “성령의 능력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 그 영의 생명이 내적으로 채워지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상식을 깨뜨리는 충격이 밀려온다.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어떤 사람에게서나 성령의 능력이 겉으로 드러나려면 그 내면의 상태도 상당한 영적인 생명력으로 이미 채워져 있어야 할 법한 것인데, 실상은 그렇지 않고 본질이 다른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저자는 서두에서, 하나님께서 사울을 지배하게 하신 운명은 오직 겉사람만을 만지는 것이며, 그 속사람에게는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울의 겉으로 나타나는 힘, 즉 능력은 항상 그 내부의 근원과 결핍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 능력은 사울의 겉사람을 옷 입히는 것에 불과한 하나님의 선물일 뿐이라고 하였다.

이에 비해, 다윗에 대한 운명의 본질은 선물이 아니라 씨처럼 속 안에서 깊이 뿌리를 내리는 하나님의 유산으로서, 그 파종이 매우 작을지라도 그것이 자라나 이윽고 모든 속사람을 채우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이기는 하지만, 그냥 저절로 이루어지고 자라나서 속사람의 모든 부분을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슬픔, 그리고 좌절과 잘 섞여져야만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고난과 역경과 욕망과 유혹 속에서라도 하나님에게서 떠나지 않으며 오직 그 유산을 지켜내야만 한다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유산은 곧 영의 생명을 뜻하는 것이다.


울은 준수한 용모의 위대한 통치자로서 비록 겉사람의 능력은 있었지만 그 속에서 영의 생명이 채워지지 않음으로 인해 끝없는 욕망과 자만심, 시기심과 분노를 버리지 못하고 하나님을 떠나 죄악에서 벗어나지 못한 반면에, 다윗은 끊이지 않는 위기와 역경의 고통 속에서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묻고 의탁하며 하나님의 유산을 지켜냄으로써 그가 지은 죄까지 용서를 받으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될 수 있었다. 겉사람으로서는 화려했지만 속사람으로서는 가치가 없었던 사울을 통해, 저자는 왜 하나님은 속이 죽은 뼈무더기 같은 자에게도 능력을 주시는가에 대해 묻고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img3]  “그분은 형편없는 사람에게 더 큰 능력을 주심으로

    써 결국에는 모든 사람들로 그 사람 안에 있는 내

    적인 헐벗음의 진정한 모습을 보도록 하시는 것

    입니다.”

가슴 섬뜩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우리에게는 밖으로 향해 볼 수 있는 눈만 있을 뿐 자기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눈이 없다. 각자의 생각에 자신을 잘 아는 것 같아도 사실은 잘 모르며, 최소한의 겸손으로 자기 생각에 도취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의 진정한 내면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다른 사람들에게 내 안의 영은 채워진 것 없이 텅 빈 그런 헐벗은 모습으로 보여지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께서는 나를 어떻게 쓰시고 계신 것일까? 각자가 자문해 볼 일이지만 답은 구할 수 없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영의 눈으로 타인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가 있을까? 하나님께 물어 누구의 내면의 모습이 어떤지, 어떻게 쓰임을 받고 있는지에 대해 답을 들을 수 있을까? 저자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분은 절대 말씀하지 않으신다고··· 누가 사울의 반열에 있는지, 다윗의 반열에 있는지··· 하나님 외에 아무도 알 수 없다.


나님은 사울을 사용하여 다윗을 깨뜨리셨다. ‘깨달음의 학교’ 에서 다윗은 철저하게 연단되어 내면의 풍성한 생명을 추구하는 원리를 터득했지만, 사울과 압살롬은 외적 능력에만 집착한 나머지 처음부터 아니면 중도에 탈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사울왕의 추격과 사랑하는 아들의 반역을 통해서 수없이 깨뜨려진 다윗은 스스로를 낮추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법을 배웠던 것이다.

오늘날 이 시대에도 능력은 있으되 깨어짐이 없는 권위가 얼마나 많이 있을 것인가? 특별히 저자는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지도자들 중에 사울의 계열에 속할 것으로 생각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임을 경계하면서, 그렇게 여겨지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리고 그들로부터 상처를 받았을 때라도, 누가 정말 사울의 계열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데 오히려 스스로 사울의 부류에 속하게 되지는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면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거의 없습니다. 아마 아무것도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이,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는 동안 당신의 지도자가 하는

   행동이, 당신의 지도자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 주게 될 것입니다.

   그 시간의 흐름, 그리고 그 지도자에 대한 당신의 반응들이 -그가 다윗이건

   사울이건 간에- 바로 당신에 대한 많은 것을 보여 주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사울도 아니고 다윗도 아니다. 단지 이 땅의 시민에 불과하지만, 우리에게도 다윗과 같은 깨어짐의 축복으로 겉사람의 허상이 완전히 깨뜨려지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라야 할 것이다. 비록 오늘은 아닐지라도 내일이나 그 후 어느 때라도 최소한 사울과 같이 쓰여지게 되지는 않기를 진정으로 바라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저자가 말한 것처럼 힘 있고, 진실하며, 경건하고, 순수함 밖에는 다른 동기가 없어 보이는 듯한 우리의 기도와 열정 밑에 숨겨져 있는 것이 야망이며, 명성에 대한 갈망이며, 영적인 거인으로 여겨지기를 원하는 욕구가 아니기를 매 순간 순간 끊임없이 간구해야만 하는 것이다.

 

* 아버지 하나님, 지금 이 순간 내 안의 나는 무엇입니까? 겉으로는 신실한 것 같아도 내 속에는 온갖 사악한

   마음들이 가득차서 죄성을 버리지 못한 채 욕망의 그늘을 헤매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는 아무리 아니라고

   우길지라도 교만한 생각에 눈과 귀가 다 멀어서 하나님의 마음을 떠나 외식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진실로 간구하오니,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권위와 능력보다는 내 안의 속사람이 먼저 영적인

   생명력으로 충만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용서를 구할 바가 있을 때 언제든지 주저함이 없이 내어놓고

   회개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맡기고 의탁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 가을이 깊어 가는 때에 맞추어 뜻밖에도 좋은 책을 또 선물로 받았습니다. 염치없이 선물을 받으면서 변변히

   고마움의 인사도 전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기쁜 나머지 빨리 책을 읽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이제서야 겨우

   읽은 것을 정리하고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늘상 그렇듯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저의 부끄러운 면면

   들만 자꾸 떠오르게 됩니다. 그래도 늘 저를 버리지 않고 품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 2006년 10월 마지막 날 밤, 인왕산 밑에서.

 

* [세 왕 이야기] : 진 에드워드(Gene Edwards) 목사 지음, 허 령 옮김, 예수전도단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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